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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에 말씀이 없는 이유 태초의 말씀과 거듭남

 

 

신학교에 말씀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과 예수님이 그곳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의 말씀이고,

요한복음 1장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예수님도 태초의 말씀이니,

요한 1서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하나님과 예수님이 있는 곳은 말씀이 있고,

말씀이 없는 곳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없다는 증거가 됩니다.

 

태초의 말씀이 하나님이시기에 말씀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말씀을 보는 것이 하나님을 보는 것이지요.

또한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며,

말씀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아는 것, 곧 말씀을 아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호세아 6장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통해서 알 수 있을까요?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 하셨으니 하나님을 아는 것이 말씀을 아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요한 1서 1장)

 

그러나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고 그 뜻대로 행하려 하기 보다는,

열심은 있으나 말씀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 대한 열심과 충성으로만 만족하며 신앙하고 있습니다.

그 행동은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쓰는 것과 같다고 로마서는 말하고 있지요.

로마서 10장

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제대로 아는 가운데 행해지는 열심과 충성, 그리고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더욱 기뻐하시며 영광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말씀을 깨닫는 것이 중요할까요?

유대인들은 성경을 달달 외우고 성경 역사를 잘 알았으나, 말씀이신 예수님을 영접치 않고 핍박하며 십자가를 지게 하였습니다. 

 

동영상을 보고 말씀의 중요성과

하나님과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려면 어떤 말씀을 깨달아야 하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